<비디오 게임의 황금시대
>- 8비트 가정용 게임기 -
아타리 2600(Atari 2600)
| |
| 아타리 2600의 모습. 옛날 게임기는 이렇게 생겼다. |
2600 시스템은 당시에 최고의 비디오 게임기로 군림했다. 게임 회사들이 만들어 내던 수 천 개의 게임들은 모두 아타리 2600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비록 국내에서는 아타리 2600의 높은 가격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지만 외국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가장 많은 게임을 확보하고 있는 게임기로 성장을 하게 됐다.
아타리 2600의 하드웨어를 살펴보면 두뇌에 해당하는 CPU로는 1.19MHz로
작동되는 6507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이 프로세서는 초당 1000개 정도의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타리 2600의 기본 메모리로는 128 바이트의 RAM을 장착하고 있었다.
펜티엄 100MHz짜리 CPU가 초당 10억 개 정도의 명령어를 처리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던 게임기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사실상 펜티엄 100MHz 짜리 컴퓨터조차도 요즘에는 쓰이지 않는 고물이며 최근의 게임들은 펜티엄 IV 1.5G MHz에 고성능의 3D 가속카드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타리 2600의 시스템 OS를 담고 있던 ROM의 크기는 6Kb에 불과하였고 게임을 담고 있던 게임팩들은 최대 2Kb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 |
| 팩맨. 남코에서 만든 불후의 명작. |
지금 아타리 2600의 하드웨어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PS2나 X박스 같은 게임기에 비교할 때 너무나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아타리 2600의 인기를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PS2나 X박스의 인기가 초라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에 아타리는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독주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던 게이머라면 팩맨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흑백 게임 시절에 오락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게임들이었다. 이런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팩맨을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가능하게 했던 게임기. 바로 아타리 2600 이었다.
오딧세이 2(Oddissey 2)
오딧세이 2는 1978년에 매그나복스(Magnavox)사에 의해서 개발 됐다. 오딧세이 2는 아타리 2600을 겨냥해서 만든 가정용 게임기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아타리 2600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지만 오딧세이 2를 위한 게임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딧세이 2는 인텔의 1.78MHz로 작동하는8048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었고, 64 바이트의 RAM과 1K의 ROM을 장착하고 있었다. 아타리 2600에 비해서 늦게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도 아타리 2600을 능가하지 못했던 게임기였다.
벡트렉스(Vectrex)
1983년 여름에 미국의 밀튼 브레들리사에서 개발한 게임기인 벡트랙게임기에서 컬러를 표현하기 위해서 색색의 셀로판 종이를 화면에 붙여야 했다), 빠른 속도로 화면을 디스플레이 하는 것이 가능했다스는 당시의 다른 게임기와는 큰 차이를 두고 있었던 독특한 게임기였다. 일단 벡트랙스는 9인치의 벡터 모니터를 내장하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조이스틱이 부착되어 있었다. 벡터 모니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컬러의 표현은 불가능하였지만(이 .
벡트렉스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는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하였지만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은 바로 아타리사에서 벡트렉스 게임기용으로 개발한 '애스트로이드'이다. 이 게임은 8비트 게임기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미국의 하스브로 인터렉티브라는 게임 제작 회사에 의해서 1999년에 3D 게임으로 PC에 다시 한번 이식될 정도로 대단했던 게임이다.
콜레코 비전(Coleco Vision)
콜레코 비전은 아타리 2600에 대응한 게임기로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실제로 콜레코 비전은 8비트 프로세서를 장착한 게임기였지만 아타리 2600보다 향상된 기능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컬러를 사용한 시스템이라는 것이었다. 콜레코 비전은 16 색상의 팔레트를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8개의 색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인기를 식히기에 콜레코 비전을 위한 게임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985년이 되기 전에 가정용 비디오 게임시장 자체가 개인용 컴퓨터에 의해서 시장을 모두 빼앗겨 버렸고 이때 콜레코 비전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가정용 컬러 게임기라는 장점 때문이었는지 그 이후에도 꾸준히 콜레코 비전을 위한 게임들이 개발 됐다. 결국 콜레코 비전은 개발사인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시장에 뛰어들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이때부터 닌텐도는 오락실 게임보다는 가정용 게임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콜레코 비전으로 출시된 게임 중에 가장 유명한 게임은 바로 '돈킹콩'이다. 이 게임은 오락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닌텐도의 마스코트인 '마리오'가 등장하는 최초의 게임이기도 하다. 비록 콜레코 비전은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실패를 하였지만 개발사인 닌텐도 측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시기였고 돈킹콩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던 마리오를 마스코트로 앞세워 본격적으로 비디오 게임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돈킹콩 이외에도 닌텐도는 '몽타주마의 복수' 같이 콜레코 비전의 컬러 화면을 장점으로 이용한 아케이드식 게임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아타리 5200(Atari 5200)
등장했다.
아타리 5200. 당대 최고의
캐릭터들이 모두
아타리 5200 시스템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 시장을 다시 한 번 석권하기 위해서 아타리사에서 만든 회심의 작품이기도 했다. 아타리 2600이 등장하고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르자 많은 수의 게이머들은 더 이상 아타리 2600의 흑백 화면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이 시기에 오락실에는 화려한(?) 컬러 그래픽을 자랑하는 갤러그 등의 게임이 선보였기 때문에 불후의 명작으로 꼽혔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기도 차츰 식어가는 추세였다. 그래서 아타리는 기존의 아타리 2600에 파격적인 하드웨어의 개조를 시작하였고 아타리 5200이라는 이름으로 차세대 게임기를 선보이게 된다.
아타리 5200의 하드웨어 성능을 살펴보면 CPU로 1.78MHz로 작동하는8비트의 6502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아타리 5200은 아타리 2600에 비해서 빠른 클럭 주파수를 사용했기 때문에 게임은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또한 프로세서가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메모리의 양도 전폭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기본 메모리로 16KB의 RAM을 장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도 많은 게이머들을 주목시킨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컬러를 디스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했던 게임기라는 것이다. 아타리 5200은 256색상을 가진 팔레트에서 동시에 16개의 색상을 꺼내어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화면 해상도는 320X192를 표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운드 재생 시스템도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여 동시에 4채널의 모노 사운드를 출력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이 게임기는 당시에 8비트 가정용 컴퓨터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아타리 400/800 시스템과 거의 동일한 성능을 나타낼 수 있었다. 아타리 5200은 당시 가정용 게임기가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사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타리 5200은 기존의 2600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저가형의 8비트 컴퓨터가 많이 등장하였고 그 중 애플 컴퓨터의 강세로 인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8비트 컴퓨터 시장에 의해서 많이 밀렸기 때문이었다.
게임 보이(Game Boy)
닌텐도사에서 개발한 게임 보이는 아직까지도 가장 유명한 포켓형 비디오 게임기로서 군림하고 있다. 사실 게임 보이가 등장하였을 당시에는 경쟁사의 제품인 세가의 게임기어, 아타리의 Lynx에 비해서 형편없는 성능을 가진 게임기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게임 보이는 아주 싼 가격에 게임을 가지고 다니면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닌텐도의 전략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게이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게임 보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특히 게임 보이는 출시되자 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약 800개 정도의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게임 보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게임 보이의 하드웨어에 관해서 잠시 살펴보자. 게임 보이는 4.19430Mhz로 작동하는Z80 프로세서를 장착하였고, 8Kb의 RAM이 내장되어 있었다. 게임은 롬 팩을 사용하였는데 16Kb에서 최대 512Kb의 용량에 게임을 담을 수 있었다. 게임 보이는 4Kb의 비디오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고, 4채널의 모노 사운드 재생이 가능했다.
포켓용 게임기였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디스플레이를 위한 화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160X144의 해상도를 갖는 LCD 스크린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 LCD 스크린은 4가지 음영을 표현할 수 있는 흑백 화면이었다. 게임 보이는 최대 40개의 스프라이트(한 개의 스프라이트는 8X8 또는 8X16의 크기를 가질 수 있었다.)를 사용한 게임이 실행 가능했다. 게임 보이의 최대 장점은 역시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4개의 AA형 배터리를 사용하여 약 35시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게임 보이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서 현재 1999년에도 게임 보이(물론 현 시대에 맞게 새로 개발된 게임 보이 시리즈이다)를 찾는 게이머들은 많이 있으며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가 게임기어(Gamegear/Master)
게임기어.
당시 최고의 액션 게임이었던
원더 보이를 할 수 있었던
세가의 '게임기어'는 '마스터' 또는 '마크 3'라는 또 다른 해외에서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게임기로 1984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기어는 8비트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큰 인기를 끌었지만 닌텐도사의 패미콤이 등장하면서부터 그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패미콤보다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훌륭한 마케팅과 게임시장 공략으로 게임기어의 인기는 날로 떨어졌지만 유럽 시장에서 만큼은 세가의 게임기어가 패미콤보다 강세를 보였다.
세가의 게임기어는 8비트의 3.6MHz로 작동하는Z80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었고, 512가지 색상의 팔레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중 64색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화면의 해상도는 256X220을 사용하였고 한 화면에 64개의 스프라이트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각각의 스프라이트의 크기는 최대 32X32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가정용 게임기로서는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세가의 고전적인 횡 스크롤 액션 게임인 '원더 보이'를 가정에서 즐길 수 있었던 유일한 게임기가 바로 세가의 게임기어였다.
패미콤(Famicom, NES, Nintendo)
패미콤.
비디오 게임 시장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닌텐도의
1985년에 8비트 가정용 게임기로 출시된 닌텐도는 개발사인 닌텐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가정용 게임기였다(이 게임기는 일본명 패미콤, 미국명 NES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고 내부 사양은 같지만 케이스의 생김새가 모두 달랐다). 1985년은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붕괴로 게임기 시장 자체가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닌텐도에 있어서는 큰 도박과도 같은 시기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게임기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경쟁 제품인 아타리 2600, 5200 및 인텔리비전을 능가하는 인기를 보여 주었다.
실제로 닌텐도는 아타리의 5200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게임이 실행되었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만들었던 닌텐도는 게이머가 큰 불만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을 할 수 있었다. NES로 불리던 닌텐도는 세가의 게임기어가 발표되고 나서 얼마 후에 발표됐다. 경쟁사인 세가의 게임기어 역시 닌텐도 게임기 보다 좋은 하드웨어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닌텐도의 시장 공략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닌텐도는 유럽 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닌텐도가 게임기의 왕자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유럽 시장에서는 세가의 게임기어가 단연코 최고의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닌텐도는 1.79MHz로 작동되는8비트의 6502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었다(세가의 게임기어는 3.6Mhz의 Z80). 화면 해상도는 160X192(게임기어 256X220)를 표현할 수 있었고, 52개의 팔레트 중에서 16컬러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다(게임 기어 512 색상 중 64색 동시 표현). 화면에 표시할 수 있었던 스프라이트의 표현 수는 게임기어와 동일한 64개였지만 스프라이트 크기는 8X16(게임기어 32X32)을 사용했다.
닌텐도는 모든 면에서 경쟁사 제품인 세가의 게임기어보다 좋지 못했지만 게임 슈퍼마리오의 대히트로 인해서 게임기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개 이상을 팔았다고 하는 닌텐도 게임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나머지 비디오 게임기를 표현하는 대명사가 '닌텐도'가 되었을 정도다.
- 16비트 가정용 게임기 - Electronics)는 인텔리전트 텔레비전이라는 상품을 개발하게 된다. 결국 '인텔리비전'이라고 불리게되는 이 시스템은 초기에 12개의 게임만을 가지고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철옹성으로 불리던 아타리 2600의 시장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텔리비전은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성공하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3백 만대 정도를 팔았다고 한다. 그 이후에 인텔리비전 II가 출시되었고 인텔리 비전 III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인텔리비전 II의 실패로 재정난을 겪고 있던 매텔 전기 회사는 결국 시리즈 III을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인텔리비전(Intellivision)
1979년에 미국의 매텔 전자회사(Mattel
인텔리비전은 최초의 16비트 게임기로 알려져 있다. GI라 불리는 16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었고, 7Kb의 RAM과 ROM을 내장하고 있었다. 사운드 시스템은 3가지 종류의 음을 재생할 수 있는 단순한 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디오 장치는 상당히 진보됐다. 192X160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16컬러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20여 년 전인 79년도에는 대단히 획기적인 기술을 사용했던 게임기였다.
아타리 Lynx(Atari Lynx)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Lynx는 아타리 컴퓨터에서 5200의 실패를 만회 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만든 16비트 가정용 게임기였다. 8비트 컴퓨터에 잠식된 가정용 게임기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16비트 CPU를 채택하여 게임기를 만든 것이다. 기존의 아타리 5200에 비교해 본다면 그래픽적인 면은 별로 발전이 없었지만 스테레오 사운드를 지원하기 시작하였고 게임을 더욱 빠르게 돌릴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분히 16비트 시스템의 장점을 갖추고 있어서인지 8비트 컴퓨터에서는 해 낼 수 없는 복잡한 게임들을 척척 실행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Lynx는 아타리사에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보게 해 준다. 실제로 Lynx가 실패한 이유는 게임기의 성능보다는 아타리사의 홍보가 부족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 이런 아쉬움을 남기며 당시에 대를 앞서가던 게임기인 Lynx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됐다.
실제로 이 게임기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Lynx를 통해서 만들어진 몇 개의 게임들은 아직도 게이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사일 코맨드'이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게이머의 기지를 폭파시키지 못하도록 방어용 미사일을 발사하여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게임인데, 지금은 이 게임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큰 충격을 던져 주었던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비록 게임기인 Lynx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없지만 '미사일 코맨드'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은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드웨어는 죽었지만, 소프트웨어는 성공한 케이스다.
PC 엔진(PC-engine)
NEC에서 만든 PC 엔진(미국에서는 TurboGrafx-16로 알려져 있다)은 1988년에 만들어 졌다. 기존에 16비트 프로세서를 사용하던 게임기가 몇 개 있었지만 이들은 진정한 16비트 프로세서의 성능을 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16비트 게임기 시대를 시작한 것은 바로 PC 엔진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PC 엔진의 메인 프로세서는 8비트였다. 그러나 PC엔진이 16비트 게임기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그래픽 프로세서에 있다.
NEC는 자사에서 개발한 Grafx-16으로 불리는 그래픽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에 메인 프로세서는 게임을 실행시키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됐다. 게임의 실행과 그래픽의 처리를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PC 엔진에서는 동시에 512개의 색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빠른 처리속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게이머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한 하드웨어였다. PC 엔진의 하드웨어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남코, 허드슨 소프트웨어 등은 자사의 게임들을 PC 엔진으로 이식하기 시작하였고 이때 등장한 게임들이 R-타입, 갤러그, 드래곤 스피리츠 등이다.
세가 메가 드라이브(Genesis, Mega Drive)
드라이브.
진정한 16비트 게임기라고
말할 수 있는 메가
1989년 2/4분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는 닌텐도에 빼았겼던 8비트 게임기 시장을 석권하고자 만들어진 16비트 게임기다. 메가드라이브가 시장에 나오자 게이머들 사이에서 그 인기는 빠르게 퍼져나가게 됐다. 메가 드라이브의 가장 큰 매력은 빠른 스피드와 대용량의 저장공간이었다. 됐다. 세가는 메가 드라이브를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대를 팔았다고 한다.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는 닌텐도사의 경쟁 상품인 슈퍼 닌텐도(슈퍼 패미콤)가 나오기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으며 8비트 게임기 시장을 주도하던 패미콤의 시대를 종료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드라이브에 그대로 심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 보였는데 이것은 고 해상도의 컬러 LCD 스크린을 장착하고 있는 포터블형 메가드라이브 였다(미국에서는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나 일본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후에 메가 드라이브는 CD롬을 장착할 수 있는 게임기가 됐다. CD롬의 장착은 단순하게 저장공간을 확장시켰다는 것 이외에도 CD음질의 디지털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결국 CD의 장착으로 더욱 빠른 계산이 요구됐고 세가는 1994년에 메가 드라이브의 수정 버전인 세가 CD와 32X를 내놓게 됐다.
게임기 역사에 있어서 진정한 16비트 게임기로 알려져 있는 메가 드라이브는 빠르게 게임기 시장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고 게임기가 출시된 후 9년 동안 총 1,200개의 게임 타이틀을 가지게
8비트 게임기 때도 그랬지만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는 경쟁사인 슈퍼 닌텐도(1년 후에 출시 됐다)보다 훨씬 좋은 하드웨어 사양을 가지고 있었다. 세가는 자사의 마스코트인 소닉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소닉팀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빠르다'는 이미지를 메가
확실히 메가 드라이브는 빨랐다. 추후에 메가 드라이브의 변형인 '노매드(Nomad)'가
메가 드라이브의 하드웨어 사양에 관해서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메가 드라이브는 7.8MHz로 작동하는 16비트의 모토로라 68000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그리고 사운드 데이터 처리를 위한 보조 프로세서로 4MHz로 작동하는 Z80프로세서를 채택했다. 64Kb의 RAM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64색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추후에 발표된 세가 CD의 경우는 12MHz 68000 CPU, 1배속 CD-ROM이 추가됐고 32X 시스템에는 32비트의 RISC 프로세서를 채용하고 7.8MHz로 동작하는 68000을 사용했다. 또한 동시에 32,768가지의 색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롭게 설계돼 그야말로 환상적인 그래픽을 제공하는 게임기로 모습을 바꾸었다.
슈퍼 패미콤(Super Famicom)
1991년 8월 달에 그 실체를 드러낸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은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에 의해서 빼앗긴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다시 되 찾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다. 모든 면에서 볼 때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 보다 사양이 낮았던 슈퍼 패미콤이 세가를 누르고 다시 비디오 게임계의 최고로 올라 설 수 있었던 것은 게임 제작사였던 캡콤의 공헌이 컸다. 어떻게 생각하면 게이머들은 슈퍼 패미콤을 원했던 것이 아니고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원했던 것 같다. 어쨌든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은 전 세계적으로 4억 6천만대 정도를 판매했다고 하니 그 인기는 가히 살인적인 것이었다. 롤플레잉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에서는 CPU의 속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액션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느린 CPU 속도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 패미콤은 스트리트 파이터 2를 돌리기에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었기에 외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방법을 찾게 됐다. 그것은 특별히 고안된 칩(Super FX라 불리던 칩)을 추가로 설치하여 게임의 계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결국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와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은 막강한 경쟁 상대로 전 세계의 게임기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확실하다. 1990년에 개발된 네오지오는 초기에 게임기 가격이 80여 만원 정도(이에 비하면 한국판 PS2는 싸게 나온 것이다. 초기에 세가 새턴도 구입시에 80여 만원이 필요했다) 하던 고가의 장비였고 게임 카트리지 한 개는 무려 20만원 정도가 있어야 구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높은 가격 때문에 네오지오 게임기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SNK사의 게임 매니아에게는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슈퍼 패미콤에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슈퍼 패미콤은 경쟁사인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 보다 1년이나 늦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느린 속도의 CPU를 사용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이것은 일본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 프로그래머들은 슈퍼 패미콤의 느린 속도를 극복할 수 있는
참고로 슈퍼 패미콤의 하드웨어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3.6MHz로 동작하는 16비트 65816 프로세서의 사용과 128Kb의 기본 메모리를 갖추고 있었다. 컬러 시스템은 32,768의 팔레트 중에서 동시에 256색상을 표현 가능했다. 사운드 시스템으로는 8채널의 디지털 스테레오가 재생 가능했고 몇 가지 특수 효과음을 재생할 수 있었다.
네오지오(NEOGEO)
네오지오는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던 획기적인 게임기였다는 것은
카트리지 한 개에는 무려 42MB의 용량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게임기 보다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제공할 수 있었다. 속칭 '최초로 오락실과 완전히 똑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정용 게임기'라는 명성을 얻게 된 네오지오는 16비트의 모토로라 68000 프로세서와 8비트 Z80프로세서를 동시에 장착했다. 화면 해상도는 320X240을 표현할 수 있었고, 당시 게임기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16비트 팔레트(65,536 색상)를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4,096개의 색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최대 380개의 스프라이트를 사용한 게임을 실행시킬 수 있었고 게임팩은 42MB의 용량을, 본체는 7BM의 메모리를 장착하고 있었다. 특히 WROM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을 세이브 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했다. 네오지오의 사운드 출력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최초로 8 채널을 사용한 사운드를 재생하였는데 이중 7개 채널은 모두 디지털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었다.
사실상 오락실용 SNK 게임기와 동일한 하드웨어 사양을 가지고 있던 네오지오는 오락실과 똑같은 아케이드 스틱을 제공했기 때문에 게이머에게는 가지고 싶은 게임기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용호의 권이나 아랑 전설, 사무라이 쇼다운을 가정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게이머에게는 꿈같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네오지오가 게임기 시장에 등장하였을 때는 이미 닌텐도와 세가가 게임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오락실과 완전히 똑같은 기계로서 SNK 게임 매니아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네오지오 게임기의 유일한 단점은 90년 당시에는 너무나도 비싼 가격으로 출시됐다는 것이었다. 결국 네오지오는 1994년도에 네오지오 CD를 만들어 출시했다.
- 32비트 가정용 게임기 -
세가 새턴(Saturn)
1994년 말에 처음으로 등장한 세가의 32비트 게임기인 새턴은 2개의 32비트 프로세서를 병렬로 연결하여 게임을 실행시켰기 때문에 64비트 게임기가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세가 새턴은 본격적으로 CD를 게임의 저장 매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세가 새턴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는 오락실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었던 최초의 3D 격투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가 실행되는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라는 것 때문에 많은 게이머가 큰돈을 투자하여 서로 게임기를 구입했다. 이식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세가의 게임을 좋아하는 세가 매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세가 새턴은 히타치에서 만든 SH-2 프로세서를 2개 장착하고 있었고, 별도의 사운드 재생을 위해서 모토로라의 68000 프로세서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
특히 세가 세턴은 오락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들을 모두
세가 새턴은 비디오 게임기로서는 최초로 24비트의 색상을 화면에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새턴이 출시된 후 몇 개월 후에 등장한 소니의 PS 때문에 새턴의 3D 처리 능력이 한계를 보였고 3D 게임에서 강세를 보였던 PS에 밀려서 새턴은 인기가 식어 갔지만 새턴이 보여주었던 2D 처리 능력은 그 어떤 게임기보다도 뛰어났었다. 특히 새턴은 메모리 확장 슬롯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2MB 램 팩을 사용한 사무라이 쇼다운 4, 4MB 램팩을 사용한 X맨 vs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게임들은 오락실의 게임과 완전히 똑같은 게임으로서 가정에서 즐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세가 새턴은 아케이드 시장에서 단연코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세가의 게임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최초로 라이팅 건을 사용한 3D 슈팅 게임인 '버추어 캅'을 선 보였고 그 이외에도 오락실에서 접할 수 있었던 상당수의 세가 게임을 세턴으로 이식했다. 하지만 새턴은 아케이드 머신과 하드웨어 성능상의 큰 격차를 줄일 수 없었고 결국 차세대 128비트 게임기인 드림캐스트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소니 PS(Playstation)
소니의 PS, 패미콤 이후
비디오 게임 시장을 완전 소니의
주도권으로 돌리게 한 게임기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처음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소니는 세가와 닌텐도라는 거대한 게임회사들 사이에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도박과 같은 상황 속에서 결국 최대의 게임 메이커로 등장하게 됐다. 소니가 이렇게 게임 시장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니의 첫 번째 게임기인 PS 덕분이다. PS은 3D 기술에 관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실리콘 그래픽스사의 엔지니어와 소니의 엔지니어들에 의해 공동으로 개발된 게임기다.
하드웨어적인 사양을 살펴보면 90년대 초반에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에 사용되던 33.8MHz로 작동되는 32비트 R3000A를 메인 프로세서로 장착했다. 실리콘 그래픽스의 지오메트리 엔진은 초당 150만개의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었고, 초당 50만개의 폴리곤에 텍스처를 입히고 광원 처리를 할 수 있다. 640X480의 해상도로 화면에 표현 가능한 색상은 세가의 새턴과 동일한 24비트 컬러를 사용했고, 게임의 저장매체 역시 세가와 동일하게 CD를 장착했다. 사운드 처리를 위해서 별도의 SPU를 내장하고 있었다.
PS의 유일한 단점은 기본 메모리의 크기가 2MB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으나 이후 3D 게임들이 유행하게 되면서 이러한 적은 메모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메인 프로세서로 사용되는 R3000A의 강력한 3D 처리 능력 때문에 PS은 3D 게임을 위한 게임기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또한 이렇게 PS이 최고의 게임기로 올라 설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유명한 게임들이 연속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남코의 철권 시리즈, 소울 엣지 뿐 아니라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7, 캡콤의 바이오해저드 1, 2가 PS용 게임으로 연속으로 출시되면서 소니는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PS은 개발자에게 상당히 개방적인 개발 환경으로 모든 소스를 공개했기 때문에 많은 개발사로부터 다양한 게임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64비트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64(Nintendo 64)
닌텐도의 부활을 꿈꾸며 제작된
닌텐도 64.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닌텐도 64는 경쟁 관계에 있는 세가 및 소니에 비해서 다소 늦게 차세대 게임기를 만들었다. 새턴과 PS이 1994년에 모습을 보였지만 닌텐도는 2년 뒤인 1996년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닌텐도는 32비트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하지 않고 곧바로 64비트 게임기를 개발했다. 세가 새턴과 소니 PS에 의해서 CD라는 매체에 길들여진 게이머에게 롬팩 게임은 너무나 고가의 게임에 속했고, 롬팩은 자체 메모리 크기의 한계 때문에 속칭 유행하는 동영상을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닌텐도는 미국 시장에서 소니 PS에 뒤를 이은 2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고 유럽 및 아시아 시장에서는 소니뿐 아니라 세가의 새턴에도 밀려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DC(DreamCast)
닌텐도 64 게임기는 93.75MHz로 동작하는 실리콘 그래픽스사의 MIPS R4300 프로세서를 장착했다. 또한 빠른 3D 처리를 위해서 62.5MHz로 동작하는 '리얼리티 이머젼'이라 불리는 실리콘 그래픽스의 그래픽 엔진을 장착했다. 기본 메모리로는 4.5MB를 장착하고 있었고 640X480의 해상도로 24비트 색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전면에는 4개의 조이스틱을 동시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서 닌텐도64의 하드웨어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실감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가정용 게임기 분야에서 3D 게임이 점차로 인기를 끌게 되자 닌텐도는 자사의 게임기를 3D에 강한 게임기로 선전을 하였고, 실제로 경쟁 제품인 세가의 새턴이나 소니의 PS보다 뛰어난 3D 처리능력을 보여 주었다. 또한 닌텐도라는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닌텐도 64의 인기가 퍼져 나갔다.
하지만 닌텐도는 게임을 담기 위해서 CD를 사용하지 않고 롬팩을 계속 고집해 나갔다.
- 128비트 가정용 게임기 -
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지
세가의 마지막 하드웨어. 차세대기 시장에서 밀린 세가는
더 이상
않기로 결정했다.
항상 새롭고 강력한 게임기를 먼저 만들기로 유명한 세가는 뛰어난 하드웨어의 성능에도 불구하고 항상 2위의 자리만을 차지했다. 8비트 및 16비트 시절에는 닌텐도에 밀려서, 32비트 시절에는 소니에 밀려서 2위를 차지한 세가는 자사의 세가 새턴이 3D 처리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났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게임기인 드림캐스트(이하 DC)를 만들었다.
DC는 그야말로 세가에서 회사의 사활을 걸고 만든 가정용 게임기로서 당시 일본에서는 세가의 전무가 CF 광고에 등장하는 등 갖은 헤프닝을 만들어 낸 게임기이기도 하다. 특히 DC는 전략적으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의 히타치, NEC 및 야마하와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제품이기 때문에 게임기의 완성도는 현재까지 나왔던 그 어느 게임기 보다 완성도가 높은 게임기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메인 프로세서로는 200MHz의 SH-4를 사용했다. 이 프로세서는 360 MIPS(초당 처리할 수 있는 명령어의 숫자. 백만 단위)의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3D 계산을 위한 전용 프로세서를 별도로 장착하고 있다. NEC의 PowerVR이 바로 그것인데 이 프로세서를 사용하면 초당 3백만 폴리곤을 렌더링 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CPU와 데이터간의 전송 속도는 초당 800 MB로 놀라운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기본 메모리로는 16MB의 메인 메모리와 8MB 의 비디오 메모리, 2MB의 사운드 메모리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
사운드 프로세싱을 위한 전용 프로세서도 별도로 가지고 있다. 64비트의 야마하 사운드 프로세서는 3D 사운드를 표현 할 수 있으며 돌비 스테레오 및 다양한 형태의 음악 데이터 압축을 풀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게임을 담기 위한 매체로는 GD를 사용하는데 겉보기에는 CD와 동일하게 생겼지만 이 속에는 1GB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특히 DC에는 33.6kbps의 모뎀을 내장하고 있어서 모뎀을 통한 네트웍 플레이를 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DC를 동작 시키는 OS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CE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존의 PC용 게임을 쉽게 이식할 수 있으며 개발 환경도 PC와 거의 똑같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DC는 아케이드 머신인 나오미 기판과 동일한 설계로 세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출시되는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을 쉽게 이식할 수 있다. 이미 DC용으로 버추어 파이터 TB, 세가 랠리 2, 파워 스톤,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2 등 유명한 아케이드 게임이 이식되었으며 DC의 오리지널 작품인 소닉 어드벤처는 환상적인 3D 효과의 사용으로 DC의 3D 처리능력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한 게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가는 이후 경쟁사인 소니의 PS2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DC를 마지막으로 게임기 사업에서는 손을 놓게됐다.

































최근 덧글